전문직 유일 '평생 보장'…범죄자 의사의 '면허 유지 법'

  • 약물 불법투여 사망, 시신 유기한 의사 A씨 면허 재교부
  • 의사, 의료행위 범죄 대해서만 면허 취소
  • 의사면허 재교부율 90% 넘어
  • 변호사, 회계사, 법무사 등 금고 이상 실형 시 자격 정지
  • 금고 이상 형 선고 시 의사면허 정지 내용 담은 개정안 국회 계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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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6-28 16:23
수정 : 2022-08-16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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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행정법원의 모습 [사진=행정법원 홈페이지 갈무리]

[아주로앤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재판장 김순열 부장판사)는 서울 모 산부인과 병원장 A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면허 재교부 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A씨에게 의사면허를 다시 발급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이 사건은 지난 2012년 7월 A씨가 자신의 병원 진료실에서 ‘잠을 편하게 푹 잘 수 있게 해달라’는 지인 B씨의 부탁을 받고 향정신성의약품인 미다졸람, 전신마취제 프로포폴 등 13가지 약물을 섞어 B씨의 정맥에 투여하면서 시작됐다.

약물을 투여받던 B씨는 그대로 숨졌다. 사인은 ‘다수 약물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중독의 기전으로 인한 호흡정지’였다.

A씨는 B씨가 숨진 사실을 확인하자 숨진 B씨를 B씨의 차량에 실은 뒤, 서울 서초구 한 공원에 차량을 방치해 사체를 유기했다.

이 사건으로 A씨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사체유기,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보건복지부도 지난 2014년 A씨의 의사 면허를 취소했다.

A씨는 출소한 뒤 한 병원 행정부장으로 일하다가 의사 면허 취소 3년 뒤인 지난 2017년 보건복지부에 의사 면허 재발급을 신청했다. 의료법 제65조 제2항은 면허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의 정, 즉 뉘우치는 마음이 뚜렷하면 3년 후 재교부를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 2020년 3월 A씨의 신청을 거부했다. 

이에 반발해 A씨가 주무 관청인 보건복지부장관을 상대로 의사 면허를 다시 교부해달라며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A씨는 “면허가 취소된 지 3년이 지나 재교부 제한 기간이 지났으며, ‘개전의 정’이 뚜렷해 재교부 신청 요건을 모두 충족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A씨가 △형사재판 과정에서 유족에게 2억5000만원을 공탁하고, 민사소송에서 손해배상금으로 3000만원을 지급한 점 △지난 10년간 의료기기 판매업,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등 많은 직업을 전전한 점 △출소 이후 수년 간 매주 비영리민간단체에서 무료급식 자원봉사 활동 등을 한 이력을 두고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A씨가) 비록 중대한 과오를 범했지만 ‘개전의 정’이 뚜렷한 의료인에게 한 번 더 재기의 기회를 부여해 자신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현장에서 봉사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의료법의 취지와 공익에 부합한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보건복지부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도 1심과 같은 판결이 나온다면 A씨는 다시 의료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의사들이 중대 범죄를 저지르고도 의사 자격을 유지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의사 C씨는 지난 2014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의사 면허가 취소됐지만, 보건복지부는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17년 4월에 C씨에게 의사 면허를 다시 내준 바 있다. 의사 면허가 이른바 ‘철밥통’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아주로앤피는 현행법상 어떤 경우에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는지 살펴봤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의료인은 언제 면허가 취소될까
의료법은 의료 분야와 관련한 범죄에 대해서만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신질환이 있거나 마약 등과 같은 향정신성의약품에 중독돼 있는 등 의사가 정상적으로 의료행위를 할 수 없을 때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의료법 제65조 제1항).

또 의사가 의료와 관련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해당 의사의 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 △의료법 위반 △허위진단서 작성 △위조 사문서 행사 △낙태 △업무상비밀누설 △허위진단을 한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같은 법에 따라서,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지역보건법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 조치법 △시체 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 △혈액관리법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약사법 △모자보건법, 그 외 의료 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자는 면허가 취소된다.
 
이 외에도 △의료법 제66조에 따른 자격 정지 처분 기간 중에 의료행위를 하거나 3회 이상 자격 정지 처분을 받은 경우 △같은 법 제11조 제1항에 따른 면허 조건을 이행하지 아니한 경우 △같은 법 제4조의3 제1항을 위반해 면허를 대여한 경우 △같은 법 제4조 제6항을 위반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한 경우 △같은 법 제27조 제5항을 위반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할 우려가 있는 수술, 수혈, 전신마취를 의료인 아닌 자에게 하게 하거나 의료인에게 면허 사항 외로 하게 한 경우에도 면허가 취소된다. 모두 의료법 위반에 해당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의료인이 의료법과 관계없는 살인, 강간 등 강력범죄를 저질러도 면허가 유지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위에서 언급한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위해를 발생하게 된 경우(의료법 제65조 1항)는 의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상황으로 제한하고 있어서, 대부분의 강력 범죄로 의사면허를 정지시킬 수 없다.

의료면허 정지를 규정한 의료법 제66조 1항에 따르면,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한 때, 보건복지부 장관은 1년의 범위에서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같은 법 2항 제1항 제1호에 따른 행위의 범위는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대통령령에는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의료행위 △비도덕적 진료행위 △방송에서 허위 또는 과장으로 의학정보를 제공하는 행위 △진료비 과다 청구 △전문의 채용 시 금품 수수 △영리 목적으로 환자 유인 △약국과의 담합행위를 의료인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로 규정한다.

그 결과 의사가 강력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 범죄가 의료와 아무런 관계가 없이 발생했다면 해당 의사 면허가 취소되지는 않는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번 의사는 영원한 의사… 재교부율 90% 넘어
 “사실상 신청하면 다 된다” 의료인은 면허가 취소돼도 재교부가 쉽다.
 
의료법 제65조 제2항 보건복지부장관은 제1항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 자라도 취소의 원인이 된 사유가 없어지거나 개전(改悛)의 정이 뚜렷하다고 인정되면 면허를 재교부할 수 있다. 이 조항에 따라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가짐을 뜻하는 '개전의 정'이 뚜렷하다면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의사 면허 재교부율이 90%를 상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9년 인재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의료인 면허 재교부율은 98.5%이다. 대부분은 면허가 재발급된다는 것이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의 자료도 같은 양상이다.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실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의사 면허 재교부 신청 96건 중 88건이 인용돼, 91.6%의 재교부율을 보였다.

같은 법 2항에 따르면, 제1항 제3호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 경우에는 취소된 날부터 1년 이내, 제1항 제2호에 따라 면허가 취소된 경우에는 취소된 날부터 2년 이내, 제1항 제4호ㆍ제6호ㆍ제7호 또는 제8조 제4호에 따른 사유로 면허가 취소된 경우에는 취소된 날부터 3년 이내에는 재교부하지 못한다. 즉 일정 기간만 지나면 의료인은 재교부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약물을 불법투여하고 시신을 유기한 의사가 면허를 다시 발급받을 수 있었던 이유 또한 이러한 이유에 있다. 법원의 “재기의 기회를 주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판단이 국민 정서에 뒤떨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한변호사협회 현판 [사진=아주경제 DB]

◆변호사·회계사·법무사는 금고 이상 실형 시 자격 정지
그렇다면 다른 전문직업군의 상황은 어떨까.
 
변호사와 회계사·법무사는 금고 이상의 형의 실형을 받거나 집행유예, 선고유예를 받으면 변호사 자격이 정지된다. 변호사법 제5조, 공인회계사법 제4조, 법무사법 제6조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는 변호사가 될 수 없다.

노무사 또한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자격이 정지된다. 공인노무사법 제4조(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공인노무사가 될 수 없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기간이 끝난 날부터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
 
감정평가사, 세무사, 관세사도 마찬가지다.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 제12조, 세무사법 제4조, 관세사법제5조 또한 공통적으로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그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3년이 지나지 않은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이 만료된 날부터 1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선고유예기간 중에 있는 사람은 자격이 정지된다.
 
변리사도 금고 이상 실형 시 자격이 정지되고 3년이 지나야 다시 자격을 획득할 수 있다. 변리사법 제4조(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람은 변리사가 되지 못한다.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집행이 면제된 날부터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사람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사람은 변리사가 될 수 없다.
 
위 직업군 모두 재취득 가능한 연수는 다르지만, 모든 형법에 따라서 금고 이상의 실형이 선고된다면 자격이 정지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의료법에 따라서만 자격이 정지되는 의료인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을 때 면허를 취소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2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15개월간 법제사법위원회를 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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