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면 감형?" 심신미약, 법원은 어떻게 봤나

  • 조두순, 심신미약 인정돼 징역 12년... "법적 하자 있어"
  •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으로 심신미약 관련 형법 제10조 개정
  • '욱'해서 아내 살해 남성, 심신 미약 주장… 법원 "받아들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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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14 16:29
수정 : 2022-09-1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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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대한민국 법원]

[아주로앤피] 

심신미약을 바라보는 법원 측 고민이 크다.
 
최근 장례식장에서 친구 부인을 성폭행한 남자가 법정에서 주취감형을 요구해 사람들에게 공분을 샀다.
 
A씨는 지난 1월 27일 오전 3시 40분께 장례식장에서 친구 부인이 상복을 입은 채 잠이 들었을 때 신체를 만지는 등 유사 강간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재판에서 “술에 취한 점을 고려해 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재판을 담당한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최지경)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A씨에게 징역 2년과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3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피고인에게 술을 먹여라’는 도서가 존재할 정도로 과거부터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일어난 범죄에 대해 형량을 감해주는 사례가 많았다.
 
이러한 판결들은 심신 미약자들을 감경해주는 형법 제10조에 근거한 것이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
 
과거부터 법원은 심신미약자들을 어떻게 보았는지 살펴봤다.
  
◆조두순, 심신미약 인정돼 징역 12년···“법적 하자 있어”
과거 법원은 조두순에 대해 심신미약을 인정해 감형한 적이 있다.
 
대법원은 2009년 9월 24일 조두순 측 상고를 기각해 징역 12년형과 전자발찌 7년, 신상 공개 5년 형을 확정 지었다.
 
조두순은 2008년 12월 1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모 교회 화장실에서 당시 등교를 하던 8세 여자아이를 납치해 성폭행하고 신체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특히 피해 아동이 이 일로 인해 성기와 항문 기능 대부분을 상실해 인공 항문을 써야만 하는 영구 장애를 입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당초 검찰은 범행의 잔혹성과 전과가 있음을 이유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판 내내 조두순은 “술에 취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진술로 일관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심신미약으로 인정해 징역 12년형을 확정했다.
 
이른바 ‘조두순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로 당시 15년이던 유기징역 상한선이 30년으로 높아졌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 김성수 [사진=연합뉴스]

◆심신미약법 개정 신호탄,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2018년 말에 있었던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은 심신미약법을 개정하게 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2020년 2월 대법원은 김성수에게 징역 30년, 동생에게 무죄를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서울고법 형사1부 정준영 부장판사) 판결을 확정했다.
 
2018년 10월 14일 김성수는 서울 강서구 모 PC방에서 자신과 시비가 붙은 아르바이트생을 폭행한 뒤 수십 차례 칼로 찔러 살해했다.
 
김성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게임에서 졌으니 환불해 달라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와 말다툼을 했다. 김성수와 동행한 동생과 아르바이트생이 서로 경찰에 전화를 걸었고 출동한 경찰은 단순한 분쟁으로 판단하고 돌아갔다.
 
그 후 김성수는 등산용 칼을 갖고 PC방으로 돌아와 범행을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동생은 아르바이트생 허리를 잡으며 형의 범행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수는 재판 과정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기 위해 우울증을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15일 정신감정 결과 심신미약 상태가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김성수에 대한 심신미약 인정 여부는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고 같은 해 10월 이를 막아 달라며 청와대에 국민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조경태 의원이 ‘심신미약자 처벌 감경 조항 삭제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12월 18일 이 조항이 개정됐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개정 전)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개정 후)

◆“음주운전 걸리고 술이냐” 말에 ‘욱’해 아내 살해, “심신미약 인정 안 돼”
‘욱’해서 아내를 살해한 남성이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달 25일 광주고법 제1형사부(이승철 판사)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60대 B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7년, 위치 추적 장치 부착 10년을 명령한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지난해 11월 28일 B씨는 저녁 6시 20분쯤 전남 고흥군 집에서 아내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최근 음주운전에 걸려 놓고 또 술을 마시냐’는 아내의 말에 분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심신 미약 상태였다”며 형량이 과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B씨의 범행을 보면 심신미약 상태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45년을 함께한 피해자를 극심한 고통 속에 허망하게 사망하게 했다”고 덧붙였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음주는 본래적 의미의 정신질병이 아니기 때문에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하지 않는 게 최근 모든 판례의 일반적인 경향”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형법 10조 2항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의 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는 ‘감경한다’인데 지금은 ‘감경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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