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우의 헌법과 정치] 개헌과 권력구조 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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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지성우 교수(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법과 정치 자문위원장)]


[법과 정치]


I. 들어가는 말 : 2018년 지방선거의 최대 이슈 ‘개헌’

지난 11월 1일 문재인 대통령은 예산안을 설명을 위한 국회 발언 중 지방분권형 헌법개정을 위해 내년 2018년 초에 여·야 합의로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6·4 지방선거시에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안을 확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법 제128조 제1항에 의하면 개헌안은 국회재적 과반수 또는 대통령이 발의하여국회의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국민투표를 거쳐 과반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아마도 문대통령의 개헌 계획에 의하면 우선 제1단계로 내년 2월 말까지 여·야가 합의하는 개헌안을 도출한다면 이를 지방선거시에 동시 국민투표를 진행할 것이다.
제2단계로 만일 2월 말까지 여·야 합의안이 제출되지 않는다면 문대통령은 대통령 4년 중임을 권력구조의 뼈대로 하는 정부안을 제출하여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의 심판을 받으려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내년 지방선거의 최대 이슈는 ‘개헌’이 될 것이고, 지금 제기되는 이슈들은 아마 여기에 모두 묻혀버릴 것이다. 개헌문제가 제기되면 개헌안에 대한 찬성·반대는 개혁과 한국의 미래에 대한 찬성·반대로 등치되기 때문에 야당도 쉽사리 반대하기 어렵다. 만일 3월~4월 쯤 정부에서 제시한 개헌안이 야당들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야당은 다시 반개혁세력으로 내몰리게 된다. 여당으로서는 꽃놀이패요, 야당은 난감하게 만드는 게 바로 개헌이슈이다.
통상 개헌문제는 정권 초기의 대통령에게는 언급조차 할 수 없는 민감한 이슈이다. 하지만 내년 3~4월에 벌어질 개헌 정국은 지금까지와는 정반대로 대통령의 권력을 더욱 공고화하고, 야당에게는 치명타를 안길 수 있는 도화선이 될 것이다.
제3단계로 내년에 야당의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아마 2020년 총선 때 개헌안을 재차 제기할 것이다. 야당은 또 다시 총선을 목전에 두고 2018년과 같이 반개혁세력이 될 것인가? 아니면 대통령이 제시한 대로 개헌안을 통과시킬 것인가? 하는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이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이전의 주요 선거에서는 갑자기 제기된 1~2개의 정치·경제·사회적 이슈로 선거판이 요동쳤었다. 그렇지만 아마도 (정치판이 늘 그렇듯이 실제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두 번의 큰 선거를 개헌이라는 초대형 태풍으로 돌파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그리고 2022년 대선까지의 정치로드맵이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하에서는 현재 개헌의 의미와 아울러 향후 개헌 논의에서 중요한 논점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II. 개헌이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는가?

흔히 헌법을 “국민이 국가에 대해 가지는 기본권에 대한 사항과 그 기본권을 유효적절하게 보장하기 위한 수단적 방법으로서의 권력구조에 관해 규정하고 있는 국가의 최고 근본규범”이라고 한다. 헌법은 법 중의 법이요, 정치와 법의 교차점이다. 정치는 헌법을 통해 실현되고 법률들은 모두 헌법의 정신을 준수하고 존중해야 한다.
헌법규범은 제정되는 순간부터 헌법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소위 ‘헌법현실’)을 규율하게 되는데, 헌법규범과 헌법현실은 헌법이 제정될 때에는 당시의 국민감정을 최대한 충분히 반영하여 제정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헌법규범이 헌법현실을 제대로 규율하기가 어려워지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국민들은 점점 헌법규정의 강제력과 현실적응력이 약화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 예를 들면 현행 1987년 헌법에는 정보화시대를 반영하는 헌법규정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국민들은 점차 헌법의 내용을 실생활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고 헌법을 경시하거나 심지어는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낡고 부적합한 헌법규정을 바꿔서 헌법규범과 헌법현실 간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헌법개정이다.
결국 ‘개헌’또는 ‘헌법개정(constitutional amendment)’이란 성문헌법에 규정된 개정절차에 따라서 헌법의 기본적 자동성(自同性), 즉 근본규범을 파괴하지 않고 헌법조항을 수정·삭제 또는 증보하여 의식적으로 헌법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이므로 최고규범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주 개정된다면 국민들의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따라서 개헌은 정말 국민들이 현행 헌법으로는 도저히 현실을 규율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순간에만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난 1972년 유신헌법이나 1987년 전두환 대통령 치하의 간접선거라는 비민주적인 대통령 선출방식에 저항하는 국민들의 함성이 다시 거리를 메우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III. 한국의 개헌사

역사적으로 1945년 8·15 해방과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9차례의 개헌이 있었다. 모두 역사적 격변기에 이루어졌다는 특징이 있다.
먼저 1948년 8·15일 정부가 수립되었을 당시에는 국회에 의한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였다. 그런데 1948~1950년까지 국민방위군 사건·거창양민학살사건 등으로 이승만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고 야당도 이승만 정권을 제대로 견제한 것도 아니어서 자연히 1950년 제2대 국회가 개원할 때에는 128명이라는 압도적인 수의 무소속 의원들이 당선되었다. 그대로 대통령 선거를 치른다면 자연히 이승만은 대통령의 직에서 물러날 판이었다. 이에 이승만은 급히 국회에 의한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개헌하는 헌법을 통과시키고 다시 대통령에 당선된다(제1차 개헌, 소위 ‘발췌개헌’).
이후 이승만대통령 치하에서 또 한 번의 개헌이 있었다. 영구집권을 꿈꾸던 이승만은 개헌을 통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을 금지하는 규정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새로운 황제를 꿈꿨다. 이 개헌안은 1954년 야당과 국민들의 거센 반대 속에 통과되었다(제2차 개헌, 소위 ‘사사오입개헌’).

제2차 개헌 이후 1960년 3월 15일 실시된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선거에서 당시 집권당인 이승만의 자유당은 무차별적으로 부정선거를 전국적으로 실시하였다. 이에 전국에서는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집회가 발생하였고, 급기야 다수의 학생과 시민들이 희생당하는 4·19혁명이 발생하여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다. 이승만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하였고, 권력의 공백을 야당인 민주당이 메우게 되었다.
민주당 정권은 허정을 중심으로 한 과도내각을 거쳐 1960년 기존의 대통령제를 포기하고 의원내각제를 채택하였다(제3차 개헌, 의원내각제개헌). 또 민주당의 제2공화국에서는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되었던 3·15부정선거의 당사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근거를 만들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였다(제4차 개헌, 소위 ‘소급개헌’).
이후 민주당 정권의 무능, 국민 각계의 지나친 요구 등의 요인들이 합쳐져서 온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던 중,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비롯한 일부 정치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창설하고 권력을 잡았으며, 1962년 12월 개헌을 통해 4년 중임과 직선제의 미국식 대통령제로 전환하였다(제5차 개헌, 대통령제로 환원). 이 헌법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정희는 4년 중임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만일 박정희 대통령이 당시 헌법과 자신의 약속대로 딱 2번, 8년만 대통령을 역임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면 인간 박정희, 정치인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금보다 훨씬 후했을 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8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기 직전인 1969년 박대통령은 ‘조국의 근대화를 완성하기 위해 다시 딱 한 번만 대통령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하면서 대통령이 3번까지 당선될 수 있도록 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제6차 개헌, 소위 ‘3선 개헌’).
그런데 박대통령은 이렇게 3번이나 정권을 연장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영구집권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발의하였다. 즉, 박대통령측에서는 1972년 10월 17일 기존의 권력체계가 동서양극의 냉전체계에서 제정되었으며, 남북대화를 예상하지 못한 시기에 제정된 것이기 때문에 현실에 적응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하는 등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적으로 선거하고 대통령의 임기를 영구적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역사상 유래 없는 반민주적인 헌법을 제정하였다(제7차 개헌, 소위 ‘유신헌법’).
이렇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박정희 정권은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이 본인이 가장 신임하던 부하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시해되면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박정희가 하나회라는 군부세력을 통해 은밀히 키워온 또 다른 정치장교 그룹인 ‘전두환’일파는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잔인하게 총칼로 강제진압한 후, 7년 단임과 간접선거를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여 정권을 찬탈하였다(제8차 개헌, 권위주의적 대통령제).
전두환 정권 집권 말기인 1985년 제12대 총선에서 야당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중요한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고,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전국적인 요구가 본격화되었다. 이후 1987년 4월까지 각 대학은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분출하는 가운데,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은 정국이 혼란해진다는 이유로 직선제 개헌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고 당시 헌법대로 간접선거에 의해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겠다고 선언하였다(소위 ‘4·13 호헌조치’).
이 선언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어서 전국적인 집회와 시위에 학생들은 물론 ‘넥타이 부대’라고 불리는 직장인들까지 각계각층이 참가하게 되었고, 6월 10일 노태우가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는 것을 계기로 6·10 민주화운동이 촉발되었다. 그 직전 6월 9일 집회에 참석했던 연세대생 이한열이 머리에 직격탄을 맞고 쓰러지는 등 전국적으로 대부분의 국민들이 육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입게 되었다. 마침내 6월 29일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는 직선제 개헌안을 수용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소위 ‘6·29선언’).
이후 1987년 9번째 개헌을 통해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와 헌법재판소 제도의 부활 등을 골자로 하는 현행 헌법에 의해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고, 야당 대표인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 속에 노태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IV. 현행 1987년 헌법의 역사적 의의와 남겨진 문제들

1. 한국 정치와 개헌사의 특징

1987년 현행 헌법을 비롯하여 한국의 개헌사는 정확하게 정치적 격변기와 일치하였다. 즉 정치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발생했을 때, 이 격변기를 헤쳐 나가기 위한 다양한 정치적인 시도가 전개되었고, 이러한 결과로 헌법이 개정되었다는 것이다.
1987년 헌법은 제정된 지 약 30년이 훌쩍 지나도록 단 한글자도 개정되지 않고 지금까지 한국의 기본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미국이나 독일이 필요에 따라 약간씩 헌법 규정을 수정해온 데 반해, 우리 헌법은 전문개정이든 일부개정이든 전혀 30년 동안 변화 없이 한국 사회를 규율해왔다. 당연히 현행 1987년 헌법(9차 개정헌법)이 제정될 때와는 현실도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헌법규범과 정치·경제의 현실에 많은 차이와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2.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하여 이번에 반드시 개헌을 해야 한다는 측에서는 현행 헌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가장 먼저 권력구조의 측면에서는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장점도 있지만 4년 마다 실시되는 국회의원선거, 또 그 중간에 실시되는 지방자치단체장·의회 선거와 겹치면서 해마다 큰 선거가 반복되어 정치권력의 피로도가 누적된다는 점이다.
아주 쉽게 설명하면 만일 대통령 선거에서 크게 져도 내년에 또 다른 선거(예를 들면 지방선거)에 이기면 되기 때문에 야당은 막무가내로 막말이라도 해대며 버티면 되는 것이다. 다음 선거 때는 이번 선거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국민들이 별로 기억을 하지 못할 뿐더러 양당체제하에서는 지역구도(이렇게 쓰고 흔히 ‘지역감정’이라고 읽는다)를 잘 활용하면 적어도 몇 개 지역에서는 기사회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에는 다시 5년 단임의 대통령의 임기가 집권 4년차를 넘어가기만 바라면 된다. 지난 30년 동안의 5년 단임제하에서의 경험상 집권 4년차가 되면 언론·검찰·학계 등이 모두 맹수가 되어 현재의 권력을 물어뜯기 시작하고, 결국 친인척이나 정치를 함께해 온 동료, 심지어는 본인까지도 차가운 구치소로 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소위 ‘집권 4년차의 법칙’).
헌법을 개정해서 4년 단임을 중임 정도로 변경하든지, 아니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여 국회와 분점하게 하지 않으면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이러한 비극은 계속될 것이다. Acton경의 말처럼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기 때문에 5년 단임의 절대적 힘을 가진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한 어느 정권도 ‘집권 4년차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둘째, 1987년 헌법에는 지방분권과 선거구제에 대한 별도의 강한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번 개헌을 통해 한국의 정치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월 1일 국회 연설에서 연방제에 버금가는 지방분권을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지방분권을 통해 수도권과 지방의 발전의 불균형을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대통령은 지방에 입법·행정·재정·복지 등 4대 자치권을 부여하고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6:4로 개선하겠다고 천명하였다. 전정권들에 비하여 실로 획기적이고 옳은 방향이다.
현재 국세와 지방세의 비율을 8:2이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자립도는 2017년 기준 53.7%로 2000년 이후 하락세이다. 특히 243개 지자체 중 약 90%가 절반도 안 되는 재정자립도를 보이고 있다. 서울의 초등학교 임용시험의 경쟁률은 1.8대 1인 반면, 근무환경이 열악한 지방은 미달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종합 부동산규제세트인 ‘8·2 대책’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집값은 상승세이지만 아마도 내년부터 지방의 아파트는 공동화 현상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교통의 발달로 부산과 광주에서 최대 2~3시간 남짓이면 서울의 유명 대형병원에서 진료 받고, 명동의 백화점에서 쇼핑하고 돌아가서 고향에서 지인들과 송년모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인구가 서울·경기에만 집중되는 것은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 수도권 과밀현상, 도시집중현상은 필연적으로 과도한 주거비 문제를 야기하고, 정치적·사회적 독점과 박탈감을 증폭시켜 결국 국가의 경쟁력과 단합을 크게 저하시킨다. 문대통령의 이번 발표는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는 것이어서 아주 고무적이다. 아마 오랫동안 지방자치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정립해 온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이전하는 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과거의 헌법을 살펴보면 중앙권력이 얼마나 지방자치에 대한 거부감이 컸는지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박정희대통령 시절의 유신헌법은 지방의회를 구성하되 ‘조국의 통일시까지 유예’한다고 규정했고, 전두환대통령 시절에는 지방의회의 구성시기를 ‘법률로 정한다’라고 규정해 놓고도 재임 7년간 ‘지방자치법’ 등 관련 법률들을 전혀 제정하지 않아 지방자치를 사실상 포기했다. 이후 겨우 1991년 지방의회가 구성되었고,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지방의회 의원의 동시선거가 치러진 것은 1995년의 일이다.
이와 같이 청와대와 중앙정부의 입장에서는 지방정부에 행정권과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이 통제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별로 탐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재정자립도를 6:4로까지 상향조정하겠다는 대통령의 발표는 지방자치 활성화에 대한 대통령의 굳은 의지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셋째, 이번 개헌 논의에서 가장 의아스럽고 안타까운 점은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가 거의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은 대통령제를 4년 중임으로 하느냐, 권력분점형으로 하느냐의 문제보다 훨씬 근본적으로 한국의 정치문화를 바꿀 수 있는 쟁점이다. 아마 그래서 정치권에서는 애써 이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흔히 정당을 같은 정치적 견해를 갖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보수·진보라는 이념적 편향성보다는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는 합리적 정책을 신뢰하고 따르고 있다. 예를 들면 보육정책에 따라 여당을 지지했다가도 세금인상 문제가 대두되면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 유권자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하다. 그렇다면 대부분 정당은 지역기반보다는 이념과 정책을 기반으로 다변화된 국민들의 상황을 세밀하고 다원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당제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현행 선거제도, 특히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전국을 20~25만 정도를 기준으로 하여 253개의 아주 작은 선거구로 쪼개고, 이렇게 소선거구제 하에서 1인의 국회의원만 선출하도록 되어 있다. 1표를 행사하고 나면 이론상 나머지 49%의 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자연히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이 자신의 이념과 부합하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이 그 정당에 투표하거나 아예 투표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선거 때마다 국회의원들이 그토록 공천에 매달리는 이유도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확률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다. 자연히 정당은 정책개발이나 지역구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게 되고, 의원 지망생들은 지역정책 보다는 공천권을 가진 정당대표 등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고, 소수정당은 목이 터져라 자신들의 정책을 홍보해봐야 마냥 메아리 없는 외침일 뿐이다.
선거 때는 미우나 고우나 “우리가(이렇게 쓰고 ‘우리 지역정당이’라고 읽는다) 남이냐?”라는 지역패권주의만 남게 된다. 현재처럼 소선거구제를 계속 유지하면 한국 정치의 퇴행성과 후진성은 도저히 치유할 수 없다.
현행 헌법에는 이러한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해소할 만한 규정이 없다. 더욱이 우려스러운 것은 여·야 정치권 나아가 문대통령마저도 여기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무런 의견을 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차제에 현재의 지역대표 정당의 구조를 이념정당으로 바꾸고, 선진적인 정치와 토론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우리 정치계에 정착되게 하려면 현재의 국회의원 소선거구제를 중·대형 선거구제로 개편해서 최소한 한 선거구에서 2~3명의 서로 다른 정치이념을 가진 국회의원들이 선출되도록 해야 한다.

IV. 맺으며 : 권력구조 개편을 바라보는 관점 변화의 필요성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으로서 태어나면서 당연히 갖는 권리이다. 국가권력은 이러한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고 신장시켜 주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1987년 헌법은 권위주의적 정권 시절에 독재에 지친 국민들이 임기 5년의 단임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기만 하면 저절로 민주주의가 꽃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다소 희망 섞인 소망을 투영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민주주의는 헌법의 규정 몇 글자를 아름답게 바꾼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현실화되는 로맨틱한 이념이 아니다. 멀게는 프랑스 혁명에서부터 가까이는 1960년 4·19의거, 1987년 6·10항쟁, 2016년 촛불혁명까지 때로는 비폭력으로, 때로는 뜨거운 피를 흘려가며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것이다. 이제 새로운 민주주의의 장이 열렸다. 이번 개헌에서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우리 모두의 열망을 온전히 담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2018년 개헌에 대한 SWOT분석

1. Stength(장점)
개헌에 대한 가장 큰 장점은 현재의 제왕적 권력구조를 획기적으로 바꾸어 진정한 의미의 권력분산형 권력구조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개헌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관심이 매우 높다.

2. Weakness(단점)
개헌을 위해서는 우선 여·야 정치권의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권력구조를 미국식의 4년 중임제로 할 것인지, 아니면 프랑스식의 이원집정부제로 할 것인지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3. Opportunity(기회)
만일 여·야가 2018년 2월 말까지 극적으로 권력구조의 형태에 합의한다면 지난 30년간 전혀 개정되지 않았던 헌법규정들이 현대 정보화사회와 국가 위기상황에 적합하게 개정될 수 있다.

4. Threat(위협)
여·야가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합의에 이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또한 국민들의 개헌에 대한 관심도가 저조하여 개헌의 추동력을 얻기도 어려운데 북한 핵위협, 지진 등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대형 이슈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 개헌이 이슈의 중심에 서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