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과연 가능할까?

  • 대법원 2015. 9. 15. 선고 2013므568 전원합의체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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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성  변호사(WF 법률사무소)
입력 : 2017-12-05 10:19
수정 : 2017-12-0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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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정치]


1. 들어가며


새내기 변호사 시절, 내가 맡은 첫 사건은 ‘이혼’이었다. 그 당시 나는 미혼이었고, 자녀를 양육하고 있지도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이혼이란 두 글자가 의뢰인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이혼 사건을 다루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나는 어느새 ‘이혼전문변호사’가 돼 있었다.

이혼 소송은 다른 여타의 소송 보다 적나라하고, 때로는 처절하고 그 만큼 삶과 밀접해 때로는 마음이 아프다. 하루의 대부분을 재판이 아니면 상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괴롭기도 하다. 이혼 소송에 있어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는 가장 고전적인(?) 주제라고 볼 수 있다.

2. 사실관계

가. 원고와 피고는 1976년 3월 9일, 혼인신고를 마친 법률상 부부로서 슬하에 성년이 된 세 자녀를 두고 있다.

나. 원고와 피고는 혼인생활 중, 원고의 늦은 귀가, 잦은 음주, 외박 등으로 인해 잦은 다툼이 있었다.

다. 원고는 1996년경 상간녀를 만나 교제 하면서 상간녀 집을 왕래했고, 상간녀와의 사이에 딸을 뒀다.

라. 원고는 피고가 원고와 상간녀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원고와 피고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자, 1999년 12월경 명예퇴직을 하고 피고와 더 이상 함께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2000년 1월경 집을 나와 현재까지 상간녀와 동거하고 있다.

마. 원고는 피고와 별거 중에도 자녀들의 학비를 부담하고 피고에게 생활비 명목으로 월 100만원 정도를 지급했는데, 신장투석으로 힘든 과정에서 2011년 말경 피고와 자녀들에게 신장이식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가 거절을 당했다. 이후 피고와의 혼인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2012년 1월부터 피고에게 생활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다.

바. 원고는 현재 동거 중인 상간녀와 사이에 중학생인 자녀가 있고, 병든 원고를 보살피고 있는 사람이 상간녀이므로 피고와의 혼인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혼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 반면, 피고는 원고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고 미혼인 두 자녀 때문이라도 원고의 이혼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한다.

3. 판례요지

가. 원심판결의 판례요지(청구기각)

원고와 피고가 약 12년 이상 별거하고 있으며, 원고와 피고 모두 관계 회복을 위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어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나아가 원‧피고 사이의 혼인관계 파탄의 주된 원인은 원고가 1996년경부터 상간녀와 부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 사이에 자녀까지 두고, 2000년 1월경 집을 나가 상간녀와 동거하고 있는 원고에게 있다.

그런데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해 주된 책임이 있는 배우자는 원칙적으로 그 파탄을 사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

다만 상대방도 그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이라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권이 인정된다.

이 사건의 경우, 피고가 1999년 11월경 원고 소유의 부동산에 관해 재산분할 청구채권을 피보전권리로 해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신청을 한 점.

2012년 12월경 위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 결정이 취소될 무렵, 과거부양료 및 과거양육비 채권을 피보전권리로 해 위 부동산에 다시 가압류신청을 한 점 등만으로는 피고가 원고와의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달리 피고가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함에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증거도 없으므로 유책배우자인 원고의 이혼 청구는 이유 없다.

결국, 원고의 이혼 청구는 ‘기각’되었다.

나. 대법원의 판례요지(상고기각)

대법원은 본 사안에서 민법 제840조 제6호 이혼사유에 관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것인지에 대해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판단기준을 확인했다.

본 사안에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확장한 예외기준을 적용했으나 이 사건 원고의 이혼청구는 기각됐다.

1) 이혼에 관해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여러 나라의 이혼법제는 우리나라와 달리 재판상 이혼만을 인정하고 있을 뿐 협의상 이혼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상대방 배우자와 협의를 통해 이혼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이는 유책배우자라도 진솔한 마음과 충분한 보상으로 상대방을 설득함으로써 이혼할 수 있는 방도가 있음을 뜻하므로, 유책배우자의 행복추구권을 위하여 재판상 이혼원인에 있어서까지 파탄주의를 도입하여야 할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파탄주의의 한계나 기준, 그리고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적 책임 등에 관해 아무런 법률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따라서 유책배우자의 상대방을 보호할 입법적인 조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현 단계에서 파탄주의를 취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널리 인정하는 경우, 유책배우자의 행복을 위해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희생되는 결과가 될 위험이 크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데에는 중혼 관계에 처하게 된 법률상 배우자의 ‘축출이혼’을 방지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런데 여러 나라에서 간통죄를 폐지하는 대신 중혼에 대한 처벌규정을 두고 있는 것에 비춰 보면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 없이 파탄주의를 도입할 경우, 법률이 금지하는 중혼을 결과적으로 인정하게 될 위험이 있다.

가족과 혼인생활에 관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크게 변화하였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대폭 증가했더라도 우리 사회가 취업, 임금, 자녀양육 등 사회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됐다고 보기에는 아직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이혼율이 급증하고 이혼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크게 변화한 것이 사실이더라도 이는 역설적으로 혼인과 가정생활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방증이다.

또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로 인해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거나 생계유지가 곤란한 경우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외면해서도 안 된다.

2)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볼 때,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혼인제도가 요구하는 도덕성에 배치되고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방지하려는 데 있다.

혼인제도가 추구하는 이상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춰 보더라도 책임이 반드시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아니한 경우에는 그러한 배우자의 이혼청구는 혼인과 가족제도를 형해화할 우려가 없고 사회의 도덕관·윤리관에도 반하지 않으므로 허용될 수 있다.

그 결과,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따른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 △나아가 이혼을 청구하는 배우자의 유책성을 상쇄할 정도로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진 경우 △세월의 경과에 따라 혼인파탄 당시 현저하였던 유책배우자의 유책성과 상대방 배우자가 받은 정신적 고통이 점차 약화돼 쌍방의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이 더 이상 무의미할 정도가 된 경우 등과 같이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이혼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할 수 있다.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지 판단할 때에는 △유책배우자 책임의 태양·정도 △상대방 배우자의 혼인계속 의사 및 유책배우자에 대한 감정 △당사자의 연령 △혼인생활의 기간과 혼인 후의 구체적인 생활관계 △별거기간, 부부간의 별거 후에 형성된 생활관계 △혼인생활의 파탄 후 여러 사정의 변경 여부 △이혼이 인정될 경우의 상대방 배우자의 정신적·사회적·경제적 상태와 생활보장의 정도 △미성년 자녀의 양육·교육·복지의 상황 △그 밖의 혼인관계의 여러 사정을 두루 고려해야 한다.

4. 판결의 의의

본 판결은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불허 하는 기존 대법원의 입장을 확인한 것으로의 의미와 예외적으로 특별한 경우에 한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확대한 의미가 있다.

종전 판례의 경우, ‘상대방 배우자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어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 축출이혼의 염려가 없는 경우’에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허용했다.

그러나 본 판결에서는 이에 더하여 ‘혼인생활의 파탄에 대한 유책성이 그 이혼 청구를 배척해야 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도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고 있다.

결국, 실제 소송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받아들여지려면 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충분한 보호와 배려가 이뤄졌는지 여부가 중요한 쟁점으로 다뤄질 것이다.

5. 나가며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정할 것인지는 기본적으로 입법정책의 문제다. 우리나라 민법에는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명문으로 배척하는 규정은 없으나, 판례상 인정되지 않는다.

본 판결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간통죄가 폐지되고, 하급심에서 잇달아 ‘파탄주의’를 반영하는 듯한 판결이 선고되고 있는 현실에 ‘유책주의’를 확인하는 경종을 울린 판결이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입법적 조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위자료나 재산분할만으로 혼인파탄에 대한 책임 없는 배우자를 보호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제도 마련이 먼저 필요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러나 추후 가혹조항(이혼 상대방 배우자나 자녀가 가혹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면 이혼을 허가하지 않는 것)이나, 이혼 후 상대방에 대한 부양제도 등 혼인파탄에 대한 책임 없는 상대방 및 자녀에 대한 입법적 보호가 마련된다면 다음번에도 유책주의가 유지될지는 알 수가 없다.

실제 소송에서 유책배우자가 이혼을 원한다면 가급적 조정에서 상대방 배우자가 원하는 최대한의 조건을 제시해 재판을 마무리하는 것이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사유(상대방 배우자 및 자녀에 대한 충분한 보호와 배려 등)를 입증하는 것보다 소송경제의 측면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반면,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기각시키고 싶다면 △상대방 배우자는 본인에게 입증책임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허용되는 예외적 사유가 없음을 적극적으로 설시(유책배우자의 경우, 이혼이 허용되는 예외적 사유가 있음을 입증할 책임이 있다) △이혼으로 인해 파탄에 책임 없는 상대방 배우자가 심히 가혹한 상태에 놓이는 경우 △부모의 이혼이 자녀의 복리를 심각하게 해치는 경우, 또는 혼인기간 중에 의도적으로 부양 및 양육 의무를 해태한 경우 등에 해당한다고 볼 사정을 법원에 현출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법원으로서는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허용되는 예외사유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부부 사이에 깨진 신뢰를 이혼 소송을 통해 확인할 때 그 과정 중 승자는 없고, 오로지 패자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미성년 자녀가 있을 때 더욱 그렇다.

이 판결을 계기로 유책주의든 파탄주의든 이혼 시 혼인파탄에 대한 책임 없는 배우자와 미성년 자녀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는 ‘이혼 후 부양제도’가 시급히 마련됐으면 한다.
 

[김동성 변호사(WF 법률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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