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지명으로 된 상표도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을까?

  •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
  • 대법원 2018년 2월 13일 선고 2017후1342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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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진  변리사(특허법인 무한)
입력 : 2018-04-10 10:26
수정 : 2022-06-0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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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M은 전주가 고향으로, 군 제대 후 서울의 큰 한식당 주방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특히 M이 요리하는 김치전은 이 식당 인기메뉴 중 하나이다. M은 요즘 자기 식당의 개업준비로 마음이 매우 들떠있다. 식당자리는 이미 정해졌고, 메뉴와 식당이름 등을 정해야 한다. M은 식당이름을 자신의 고향으로부터 따와 ‘전주식당’으로 정하려고 한다. 그런데 ‘전주식당’이라는 이름의 식당은 여러 곳에서 본 것 같은데 사용해도 괜찮을까?

누군가 어떤 명칭에 대하여 상표등록을 하면, 해당 상표는 등록한 사람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명칭에 대하여 누가 먼저 상표출원을 하였다고 하여, 등록자에게 그 명칭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하면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상표법은 어떤 명칭들은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나 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도 그 중의 하나이다. ‘서울’, ‘부산’, ‘전주’, ‘뉴욕’, ‘로마’와 같은 유명한 지명을 어느 한 사람이 상표로 독점하도록 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이 명칭을 상표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이는 공익적으로 매우 부당하다. 이러한 이유로 상표법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나 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상표법 제33조).

반대로 현저하지 않은 지리적 명칭은 상표등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지리적 명칭(지명)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고, 어떤 명칭은 현저하지 않은 것일까? 최근 이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이 있어서, 오늘은 지명으로 된 상표에 관한 판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A는 그 증조할머니가 1951년부터 대전에서 ‘사리원면옥’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운영해 온 이래, 대를 이어 식당을 운영해 오고 있다. 주메뉴는 불고기 및 냉면이다. ‘사리원’은 북한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이고, ‘면옥’은 면 요리를 파는 식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냉면을 파는 식당에서 사용한다. 이 식당은 꽤 성공하여, A는 현재 대전에 3개, 서울에 1개의 ‘사리원면옥’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A는 1994년 '냉면전문식당업'을 지정서비스업으로 하여 상표(서비스표)출원을 하였고, 1996년 상표(서비스표)등록을 하였다. A는 상표갱신을 통해서 등록상표를 유지하고 있다.

B는 1992년 서울에서 ‘사리원’이라는 이름으로 식당을 시작하였다. 이 식당도 주메뉴는 불고기 및 냉면이다. 이 식당도 꽤 성공하여, A는 현재 서울에 8개, 경기도에 1개의 ‘사리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A가 운영하는 ‘사리원’과 B가 운영하는 ‘사리원면옥’ 모두 상당히 알려져 있는 유명한 식당이다.

2016년 4월, B는, A의 등록상표인 ‘사리원면옥’의 ‘면옥’은 보통명사이고,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므로, 상표법에 위반되는 상표라는 이유로 상표무효심판을 청구하였다. 특허심판원은 이 사건을 심리한 후,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볼 수 없다고 하면서, 2016년 10월 이 심판청구를 기각하였다.

이에 대하여 B는 다시 특허법원에 상기 심판의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그러나 특허법원은 2017년 5월 특허심판원과 마찬가지로 B의 청구를 기각하였다. B는 2017년 6월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고, 대법원은 B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원심을 파기하였다. 상세한 이유는 내용이 길기 때문에 아래의 ‘3. 판결요지’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3. 판결요지

법원에서 인정된 사실은 아래와 같다.

(1) 사리원은 북한 황해도에 위치한 지역의 명칭이다.

(2) 사리원은 조선시대 조치원, 이태원, 장호원, 퇴계원과 함께 원(院)이 설치되었던 교통의 요지이고, 1947년 시로 승격된 후 1954년에는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가 되었다. 이 사건 등록상표(서비스표)의 등록결정당시인 1996년에도 사리원은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이고, 현재까지도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이다.

(3)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발행된 한국 내 초·중·고등학교의 교과서 및 지도에 사리원이 황해북도의 도청소재지이고 교통의 요지라는 등의 내용이 지속적으로 서술되거나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4) ‘사리원’으로 뉴스를 검색하면, 사리원 관련 신문기사는 주로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반까지 집중되어 있고, 그 이후에는 관련 신문기사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다만 1940년대 이후에도 북한 관련 기사나 날씨 관련 기사 등에서 사리원은 북한의 대표적인 도시 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5) 이 사건 등록상표(서비스표)가 등록될 무렵인 1996년 7월경 ‘사리원’으로 구성된 상표가 현저한 지리적 명칭만으로 된 것이라는 이유로 등록거절
된 경우가 있다.

(6) 특허법원 소송 단계에서 A 및 B는 각각 여론조사기관을 통하여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1) A의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기관은, 2016년 7월부터 8월까지 20세 이상 59세 이하 한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이에 따르면, 사리원이라는 명칭을 알고 있다는 응답자가 61.4%이고, 전체 중 음식점 관련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가 27.4%,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9.2%, 황해도 지역의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0.4%였다(복수응답가능). 이 여론조사기관은 2016년 12월 조사대상자의 연령대를 높여서 20세 이상 79세 이하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다시 조사하였다. 이에 따르면, 사리원이라는 명칭을 알고 있다는 응답자가 39.4%였다. 또한 전체 중 10%는 사리원을 음식점 관련으로 알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지명 관련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6.5%, 황해도 지역의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3.7%였다.

2) B의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기관은 2016년 9월 20세 이상 69세 이하의 한국인을 대상으로 조사하였다. 이에 따르면, 사리원이 지역의 명칭(지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응답자가 53.6%, 사리원이 북한의 지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응답자가 40%였다. 이 여론조사기관이 2016년 12월 조사대상자의 연령대를 높여서 40세 이상 한국인을 대상으로 다시 조사하였다. 이에 따르면, 사리원이라는 명칭을 알고 있다는 응답자가 51.6%이고, 이 응답자들 중 69.8%라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하였고, 50.5%는 음식점 관련이라고 답변하였다(복수응답가능). 전체 응답자를 기준으로 보면 사리원을 지명으로 알고 있는 응답자는 26.8%이고, 황해도 지역의 지명으로 알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15.8%였다.
특허법원은 이러한 조사결과에 기초하여 사리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 아니므로 등록상표무효주장은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인지 여부의 판단시점은 ‘상표등록여부 결정시’라고 전제하고, 2016년에 실시된 수요자인식조사는 상표등록일로부터 20년이나 지난 후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것이 등록결정일 당시의 일반수요자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오히려 앞의 인정사실(1)~(6)에 기초할 때, 이 사건 상표(서비스표)의 등록결정이 있었던 1996년에는 일반수요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즉, 이 사건 등록상표(서비스표)는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하였다.

4. 판결의 의의

상표법에 따르면,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나 그 약어 또는 지도만으로 된 상표는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 ‘서울’, ‘부산’, ‘전주’, ‘뉴욕’, ‘로마’와 같이 유명한 지명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이라는 것을 쉽게 판단할 수 있지만, 현저한 지명인지 현저하지 않은 지명인지 애매한 지명도 많다.

본 판결은 이 같은 상황에서 어떤 지명은 현저한 지명이고 어떤 지명은 현저하지 않은 지명인지를 판단한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한 판례로서의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5. 나가며

이상의 판결에 기초해 보면, M이 사용하고자 하는 ‘전주식당’은 현저한 지리적 명칭으로 된 상표이므로 상표등록이 어렵다. 따라서 누구도 등록상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누구도 ‘전주식당’에 대하여 등록상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상표는 아무나 사용하여도 문제가 없으므로, M은 ‘전주식당’이라는 이름을 자신의 식당에 사용하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M 자신도 ‘전주식당’에 대하여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으므로, 다른 사람이 ‘전주식당’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지명이라는 것은 생각해 보면, 시간에 따라 현저해지기도 하고(많이 알려지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한다. 외국의 어느 지명은, 원래는 우리나라에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가도, 드라마, 영화 또는 TV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유명해지기도 한다.

필자가 아는 분 중에 사리원이 고향인 노신사 분이 계신다. 한국전쟁 때 피난 오신 후 고향인 사리원에 가보지 못하셨다. 이 분은 사리원면옥과 사리원을 자주 이용하시는데, 필자도 이 분을 통해 사리원을 가깝게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을 보면서 남북 분단 이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북한의 지명들도 점점 우리와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진=특허법인 무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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