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시행사 부도, 수분양자들의 대처법

신탁회사의 계약처분권한에 대하여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8. 2. 22. 선고 2018가합5392 판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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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많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자 역시 그러하나, 부동산 투자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래 사건은 대대적인 홍보를 통하여 투자 수익성이 있는 매물이라고 광고한 버스터미널 상가건물을 분양받고 분양대금을 납입하였는데, 갑작스런 시행사의 부도로 인해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상가를 분양받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분양대금을 돌려받지도 못하던 상황에 대한 판결이다.

분양계약자들이 버스터미널 상가건물을 인수한 새로운 회사에 대해 종전의 분양계약상의 권리의무를 주장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흥미로운 결론을 설시한 판결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건축, 투자와 관련하여 부동산 신탁회사가 관여하는 경우도 많다. 이 사안은 다소 생소한 개념인 ‘신탁’에 대하여도 의미 있는 내용도 담고 있다.

2. 사실관계

A주식회사는 00시 00동에 위치한 00종합버스터미널을 건축한 시행사이고, 한국자산신탁 주식회사(이하 ‘한국자산신탁’)는 자금관리사로서 A주식회사와 부동산 담보신탁계약(이하 ‘이 사건 신탁계약’)을 체결한 회사이다. 2005년 ~ 2006년경 사이 00종합버스터미널 1충 각 호수(점포)를 분양받기 위해 이 사건 원고들(6인)을 포함한 여러 수분양자들은 A주식회사와 사이에 각각 분양계약(‘이하 이 사건 분양계약’)을 체결하였고, 그 분양계약에 따라 계약금 및 중도금을 지급하였다. 한편 A주식회사는 위 수분양자들과 사이에 00종합버스터미널 브랜드 아울렛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였고, 임대보증금은 분양대금의 잔금으로 충당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위 임대차계약이 체결된 후에도 A주식회사는 두 차례의 월 임대료만 지급하였을 뿐, 그 이후로는 월 임대료조차 지급하지 않았다. A주식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한편, 한국자산신탁은 2007년 5월 22일 이 사건 원고들의 분양 호수(점포)를 포함한 00종합버스터미널 182개 점포에 대하여 공매 공고를 하였고, A주식회사는 이 사건 공매 공고 전에 부도가 나서 폐업을 하였다. 이 사건 원고들을 포함한 여러 수분양자들은 2007년 5월말경 00종합버스터미널에 있는 A주식회사의 분양사무실에 찾아가서 분양계약의 해제와 손해배상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가 없는 채로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10년이 넘도록 00종합버스터미널은 공실만 가득한 채 비어있게 되었다.

2017년 4월 28일 한국자산신탁은 이 사건 피고인 B주식회사와 사이에 이 사건 원고들의 분양호수를 포함한 00종합버스터미널 건물을 매도하는 매매계약(이하 ‘이 사건 매매계약’)을 체결하였고, 2017년 5월 31일자로 B주식회사에게 일괄적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해 주었다. B주식회사는 2017년 8월 3일 이 사건 원고들에게 “B주식회사가 한국자산신탁으로부터 00종합버스터미널을 인수함에 따라 원고들이 분양받은 각 호수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에 대해 안내를 하고자 하니 문의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하였다. 원고들이 B주식회사를 찾아갔더니, 회사 담당자는 “점포의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려면 잔금 지급 지체에 따라 체납금액의 연 17%의 연체요율을 적용한 연체료(10년치)를 납부해야 한다” “만약 소유권을 이전받지 않고 분양대금을 반환받으려면, 기지급한 대금의 50%만 반환하겠다”는 황당한 조건을 원고들에게 제시하였다.

이 사건 원고들 6인은 필자를 찾아와 상담을 하였고, 필자는 분양계약 해제에 따른 분양대금 반환 청구를 진행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필자는 소송을 제기하고, “시행사인 A주식회사의 채무불이행 사실(분양계약일에 따른 입주예정일에 입주케 하지 못했고, 소유권이전등기절차도 마쳐주지 못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분양계약을 해제하고, B주식회사는 한국자산신탁으로부터 00종합버스터미널 건물을 매수할 당시 기존 분양계약을 인수하였으므로, B주식회사는 원고들에게 분양계약에 따른 기지급 분양대금 및 이에 대한 10년치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즉 ‘수분양자들이 기지급한 분양대금’ 뿐만 아니라 ‘과거 10년치의 지연손해금’까지 반환해야 한다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하였다. 그리고 향후 승소 시 B주식회사가 금전을 임의지급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여 00종합버스터미널의 여러 점포에 대해 미리 가압류를 해두었다.

이에 대해 피고 B주식회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① 이 사건 매매계약 상의 특약은 한국자산신탁이 추후 수분양자들과의 분쟁에 휘말리는 것을 막기 위해 넣은 조항이고, 원고는 이 사건 매매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위 계약 내용을 피고에게 주장하지 못한다. ② 이 사건 분양계약의 당사자는 원고와 A주식회사이고, 한국자산신탁은 원고의 ‘자금관리신탁사’에 불과하여 분양계약에 따른 권리․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한다. 또 이 사건 매매계약은 한국자산신탁과 피고 사이에 체결된 것이어서, 이를 원고와 A주식회사 사이의 분양계약의 인수계약이라고 볼 수도 없다.”

3. 판결 요지

“① 원고들이 구하는 분양대금반환비용이 신탁계약 상 1순위로 정산하여야 할 신탁사무처리비용에 해당하려면 수탁자인 한국자산신탁이 신탁자인 A주식회사에 대하여 그 반환의무를 부담하는 것이여야 하는데, 이 사건 신탁계약에도 우선수익권이 분양대금채무 관련 제한권리에 우선할 수 없음을 밝히고 있고, 또 한국자산신탁과 A주식회사 사이에 체결된 신탁계약이나 대리사무계약 규정은 대리의 목적이 된 부동산이 공매 등으로 소유권이 변경되었고 A주식회사가 폐업한 이상 효력을 유지할 수 없어 실효된다고 할 것이어서 수탁자인 한국자산신탁은 신탁부동산을 환가한 금액에 한해서는 A주식회사가 부담하는 수분양자들에 대한 분양계약의 해제에 따른 원상회복의무를 정산의 의무로 부담한다 할 것이다. 따라서 한국자산신탁은 수분양자들인 원고들에 대하여 분양계약의 해제에 따른 의무를 부담한다. ② B주식회사가 한국자산신탁으로부터 00종합버스터미널을 인수할 당시 기존 분양계약을 인수하는 특약을 하였고, 원고들이 B주식회사를 상대로 분양계약의 해제를 원인으로 한 분양대금의 반환을 구하고 있는 이상, 위와 같은 계약 인수에 동의 내지 승낙의 의사를 표시하였다고 볼 수 있으므로, B주식회사는 분양계약의 인수인으로서 한국자산신탁이 부담하는 분양 계약상의 의무를 부담한다. ③ 이 사건 기존 분양계약은 A주식회사의 채무불이행을 이유로 원고들을 포함한 수분양자들이 2007. 5.말경 계약해제의 의사표시를 하였고, 따라서 분양계약은 위 해제의사표시에 의하여 해제되었다. ④ 따라서 B주식회사는 원고들에게 각 기지급 분양대금 및 이에 대한 10년치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4. 판결의 의의

복잡해보이지만, 이 사건의 핵심은 “종전 원고들과 A주식회사 간 체결된 분양계약을, 한국자산신탁으로부터 부동산을 매입한 B주식회사가 인수하였는지 여부”이고, 그 전제로서 “한국자산신탁이 종전 분양계약에 따른 의무를 부담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이 사건 신탁계약은 ‘담보신탁계약’이어서 한국자산신탁은 A주식회사의 채무불이행 시 신탁목적 부동산을 환가․정산하여 ‘우선수익자의 채권을 만족시키기 위한 행위를 할 권한을 보유할 뿐’이어서 기존의 분양계약을 처분할 권한을 갖지는 않는다”는 취지로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러한 피고의 주장은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우선 신탁법 제31조에서 “수탁자는 신탁재산에 대한 권리와 의무의 귀속주체로서 신탁재산의 관리, 처분 등을 하고 신탁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이 있다. 다만, 신탁행위로 이를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규정에 의하면, 수탁자는 신탁 목적의 달성을 위해 필요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음이 원칙이고, 다만 신탁행위로 그 범위를 제한을 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사건 수탁자인 한국자산신탁은 이 사건 신탁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으며, 그 행위에는 이 사건 부동산의 분양․처분과 기존 분양계약에 대한 인수․정리 역시 포함한다고 볼 것이다. 달리 이 사건 신탁계약의 규정 어디를 보더라도 신탁행위로써 기존 분양계약 상의 권리의무를 제한하였다는 사정은 찾아볼 수 없다.

둘째, 나아가 이 사건 신탁원부의 기재에 의하면, A주식회사와 한국자산신탁 사이에 체결된 신탁계약은 신탁부동산의 소유권 관리와 위탁자가 부담하는 채무 내지는 책임의 이행을 보장하기 위하여 수탁자가 신탁부동산을 보전․관리하고 채무불이행시 환가․정산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이어서, A주식회사의 이자지급불능, 여신거래약정위반 등으로 A주식회사 명의의 사업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한국자산신탁은 신탁부동산인 이 사건 버스터미널을 처분할 수 있다고 함이 타당할 것이다.

셋째, 한국자산신탁이 단순한 자금관리 권한만 갖는다고 하면, 한국자산신탁은 00종합버스터미널을 매도할 권한도 없다고 볼 것인데, 피고가 한국자산신탁으로부터 00종합버스터미널을 매수하여 그 소유권을 취득한 현재의 결과와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사실상 수분양자들이 지급한 분양대금으로 00종합버스터미널을 건축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B주식회사는 한국자산신탁으로부터 00종합버스터미널을 인수하여 그 소유권을 취득하였음에도, 기존 수분양자들에 대한 의무만은 회피하려고 하였다.

이 판결은, 이와 같은 B주식회사의 모순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수분양자들로 하여금 자칫 잃어버릴 뻔한 권리를 찾을 수 있게 해준 현실감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법리적으로도 탄탄한 판결로 보인다.

5. 나가며

어려운 사안이었고, 아직 판례가 온전히 정립되지 아니한 것으로 보이는 신탁 관련 쟁점이 있어서 고민을 많이 한 사건이었다.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어 굉장히 기뻤고, 10년 넘도록 이어져온 원고들의 고통을 해소해 줄 수 있어서 법률가로서 큰 보람을 느꼈다. 또한 부동산 투자를 할 때는 광고 속에 보이는 이점들만 보지 말고, 어렵겠지만 ‘단점’들을 체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꼈다. 신탁사가 개입해 있어도 완전무결한 보장을 해줄 수는 없다는 점과 함께.
 

[사진=남광진 변호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