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허와실①] 기업에 ‘맞짱’ 소비자…아직은 ‘다윗과 골리앗’

  • ‘배터리 게이트’에 뿔난 소비자, 애플 상대 집단소송 제기
  • 시간 오래 걸리고 대중 관심 줄면서 기업에 유리해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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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5 09:30
수정 : 2018-06-25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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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폐암 유발 물질인 ‘라돈’에 의한 피폭이 확인된 대진침대 매트리스가 충남 천안시 대진침대 본사로 수거되고 있다. 피해고객들은 대진침대를 상대로 집단소송에 나섰다. [연합뉴스]
 

집단소송은 소비자가 기업을 상대로 피해를 보상받고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다. 소비자들은 최근 대진침대 라돈사태를 비롯해, SK텔레콤 통신장애, KB국민·NH농협·롯데 등 카드 3사 개인정보 유출 등에 대해 집단소송을 준비하거나 진행 중이다. 하지만 판결이 명확히 나온 경우가 적고, 승소한 사례도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에 집단소송제를 돈벌이로 악용하는 브로커나 유령카페 운영진도 집단소송제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꼽힌다. 집단소송으로 알려졌으나 엄밀하게는 공동소송에 그쳐있는 우리나라 집단소송도 한계로 지적받는다. 아주경제신문은 <집단소송의 허와실> 시리즈를 통해 집단소송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소비자들이 주의해야 할 점도 짚어본다. <편집자주>
 

애플이 고의로 아이폰 성능을 떨어뜨린 데 대한 집단소송이 국내에서도 제기됐다. 사진은 서울의 한 애플제품 리셀러숍.[사진=연합뉴스]

 
지난해 말 애플이 구형 아이폰의 성능을 일부러 떨어뜨렸다는 일명 ‘배터리 게이트’가 알려지면서 국내외 고객이 발칵 뒤집어졌다. 미국에서만 이와 관련한 집단소송 59건이 접수된 가운데 국내에서도 지난 3월 단일소송 기준 역대 최대 규모의 소송이 제기됐다.

이 소송에 참여한 애플 고객은 6만4000여명으로,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이 예상되는 법정 다툼에 뛰어든 것이다. 애플 고객들이 기나긴 소송에 참여한 이유는 개인이 글로벌 기업을 대상으로 피해를 보상받을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집단소송은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만이 아니라 우리 안전을 위협하는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대진침대가 발암물질인 라돈이 다량으로 든 매트리스를 판매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구매자들이 집단소송에 착수했다.

집단소송 가운데 하나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율에 따르면 1차 소송장 위임에만 2800여명이 참여했다. 태율은 지난달 20일 1차 위임을 마무리한 데 이어 이달 3일 인터넷 카페를 통해 2차 위임 접수를 마감했다.

이 같은 추세 속에 대진침대 집단소송 관련 카페가 속속 개설되면서 대진침대와 이 회사 신승호 대표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실제로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다음 주에 대진침대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 안내를 회원들에게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서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기업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1월 발생한 카드사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집단소송이다. 당시 보안시스템을 구축하는 개인신용평가회사 KCB 직원이 고객들의 개인정보 1억여건을 빼돌렸다.

카드사들은 “KCB 직원 개인 범행이라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피해 고객들의 집단소송이 줄을 이었다. 지난 2016년 서울중앙지법은 피해자 5000여명이 카드사 2곳과 KCB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피해자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SK텔레콤 이용 고객들이 통신장애와 관련해 회사를 상대로 제기했지만 패소했다. 국내에서 집단소송은 소비자가 이기기 어려운 싸움으로 꼽힌다. [아주경제 DB]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집단소송은 여전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비유된다. 2014년 참여연대가 SK텔레콤의 통신장애로 피해를 입은 고객들과 함께 나선 집단소송이 대표적이다. 당시 참여연대와 SK텔레콤 고객들은 피해보상 청구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손해배상책임을 통신사에 부과하면 전체적인 요금 인상으로 이어져 고객 전체에 피해가 갈 수 있다며 회사 손을 들어줬다.

더구나 집단소송은 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점점 대중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소송 동력도 힘을 잃게 된다. 거대 기업의 꼼수도 집단소송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흥엽 변호사는 카드사 집단소송과 관련 “카드사들은 소송을 지연시켜 참여자에게만 배상을 해주고 있다”면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다수의 피해자에겐 배상책임을 면제받는 것을 최상의 전략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한 소비자단체 관계자도 “그동안 진행된 집단소송의 공통점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이에 비례해 피고 기업의 태도도 점차 뻣뻣해지는 데 있다”며 “집단소송이 가장 주요한 도구이지만 아직까지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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