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 허와실③] 라돈침대 집단소송 이겨도 피해자 모두 배상 못받아

  • 소비자 집단소송 도입 안돼…단체소송 형태로 재판
  • 정부, 연내 소비자 집단소송제 전분야로 확대
  • 소비자 집단소송법안들 여러건 국회 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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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6-07 10:00
수정 : 2018-07-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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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사태로 239명이 사망하고 1600여명의 폐질환자가 발생했지만 제조사와 정부를 상대로 한 집단소송은 대부분 패소했거나 아직까지 진행중이다. 사진은 이 사태로 가족을 잃은 한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국내에선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이 아직 안 된 상태다. 현재 법률사무소에서 진행하고 있는 다수의 집단소송은 단체소송 형태로 진행 중이다.

집단소송은 한 명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할 경우 다른 피해자들도 별도 소송 없이 해당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단체소송은 유사한 피해를 본 여러 소비자가 모여 해당 기업에 소송을 제기하기 때문에 판결 효력이 소송 당사자들에게만 미친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은 소비자 피해구제를 강화하기 위해 대부분 집단소송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2004년 도입된 증권 관련 집단소송을 제외하고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2011), 카드사 신용정보 유출(2014), 가짜 백수오(2015), 폭스바겐 리콜(2015), 중금속 정수기(2016), 생리대 발암물질(2017), 라돈침대(2018) 사태 등 거듭되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절대 다수의 소비자는 이를 직접 보상받을 길이 없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분위기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경제민주화 핵심과제로 소비자 권한을 강화하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는 집단소송제 대상이 전체 소비자 피해 분야로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 공정거래위원회를 중심으로 기획재정부·법무부·산업통상자원부 등 유관부처가 모인 경제민주화 태스크포스(TF)팀이 관련 정책을 조율 중이다.

집단소송제는 정부입법보다 의원입법을 지원하는 형태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이미 국회에는 소비자 집단소송 관련 입법안이 여럿 제출된 상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이학영(소비자집단소송법)과 백혜련(집단소송법안), 전해철(공정거래관련 집단소송법안), 박주민(소비자 권익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안), 박영선(집단소송법안), 서영교 의원(소비자집단소송법안)이 각각 발의한 6개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국회에서 소비자 집단소송 관련 입법이 추진 중이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학영 의원의 ‘소비자집단소송법’은 최근 발의됐다. 입법 취지는 소비자가 피해자가 된 집단사고에 대응하기 위함이다. 이 법안은 소비자집단소송을 소비자단체 등이 제기하는 공통의무확인소송과 이 결과를 전제로 개별 피해자의 채권을 확정하는 채권확정절차 2단계로 구분했다. 

소송 수행권한을 소비자단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체로 한정해 부여함으로써 소송 남발의 부작용을 줄였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소비자 청구를 인용하는 확정판결은 채권신고를 한 소비자에게도 그 효력이 미치며, 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은 다른 단체가 관련 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했다. 채권신고는 손해액의 3배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가능하다.

전해철 의원의 ‘공정거래관련 집단소송법’은 부당한 공동행위나 제조물 결함으로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경우 공정거래 관련 집단소송제도로 소비자 피해를 구제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자 단체나 제조업자가 제조·거래·판매·광고하는 상품으로 여러 명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 1인이 대표가 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최근 1년간 3건 이상의 관련 소송 대표당사자 혹은 소송대리인은 참여할 수 없으며, 주요 공통 쟁점으로 인한 피해자 구성원이 50인 이상일 때만 소송이 가능하도록 했다. 확정판결은 법원에 서면으로 제외신고를 한 사람 이외의 모든 구성원에게 미친다.

박주민 의원의 ‘소비자 권익 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은 개인정보 대량 유출과 할부거래, 방문판매 등으로 인한 피해에도 대응이 가능하도록 했다. 소비자는 소비자기본법과 제조물 책임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 보호법,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 할부거래에 관한 법률,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청구를 위해 집단소송을 낼 수 있다. 

법률상·사실상 중요한 쟁점을 공통으로 한 피해자가 50명 이상일 때 소송이 가능하며, 집단소송 판결의 효력을 받지 않겠다고 법원에 서면으로 제외신고를 하지 않은 모든 피해자에게 기판력이 미친다. 집단소송을 관할하는 법원이 피고 기업의 본사 지역에 국한되지 않도록 재판 관할을 풀어 피고가 해외법인일 경우에도 국내에서 재판이 가능하다.

박영선 의원의 ‘집단소송법안’은 집단소송제 적용 범위를 특정 분야로 한정하지 않고 소비자·환경·공해 등 전 분야로 넓혔다. 피해자 개개인이 원고가 되지 않아도 모두에게 손해배상 판결 효력이 미치며, 피해자 주장을 폭넓게 인정하고 가해자는 이들 주장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등 피해자 입증책임도 완화한 점이 특징이다.

이와 관련, 법조계 관계자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에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소비자 집단소송은 소비자에게 피해입증 책임이 있다고 규정돼 있는 등 절대적으로 기업에 유리했다”며 “집단소송이 전 분야에 도입되면 앞으로 관련 소송이 폭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계는 소송 남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 대부분이 소비자와의 법적 다툼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합의금을 주고 빨리 소송을 종결짓기를 바랄 것”이라면서 “이럴 경우 집단소송이 소비자 권익보다는 변호사에 의해 악의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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