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드레퓌스에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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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
입력 : 2020-03-07 09:00
수정 : 2020-03-0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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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을 증오하고 진실을 추구하는가? 우리가 인정하기 싫은 진실이 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있는가? 그 진실이 당신이 평소에 지지하고 편들던 진영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라도?”

위 질문은 만화가 신일용 작가가 <아름다운 시대 라 벨르 에뽀끄> 2권에서 19세기 말 프랑스를 온통 흔들어놓았던 드레퓌스 사건을 그리면서 서두에서 던진 질문이다.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온 신작가는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역사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고 싶어 안락한 직장을 뛰쳐나왔다. 당신이라면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겠는가? 망설이지 않고 당연히 진실을 추구한다고 대답하겠는가? 그렇지만 자신이 실제로 처한 상황에서 자신이 속한 집단과의 관계에서 이런 질문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그렇게 쉽게 답할 수 있을 것인가?

신작가는 드레퓌스 사건이 개인의 가치관과 정치성향을 떠나 진실만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말해주고 있다고 한다. 드레퓌스 사건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1894년 9월 프랑스의 독일 대사관에서 근무하던 청소 아줌마가 쓰레기통에서 프랑스군 정보가 담긴 찢어진 메모를 발견하였다. 신고를 받은 프랑스 군정보국은 명백한 증거가 없음에도 알프레드 드레퓌스 포병 대위의 필체가 위 메모의 필체와 비슷하다며 체포하였다. 드레퓌스는 알사스 출신으로 독일어를 할 줄 알고 무엇보다도 프랑스 사람들이 싫어하는 유대인이었다. 편견이 드레퓌스를 체포하게 한 것이다. 이미 드레퓌스를 범인으로 단정한 극우언론은 드레퓌스를 아직도 감옥에 보내지 못하는 것은 장관이 유대인 단체들로부터 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가짜 뉴스를 보도하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부담을 느낀 수사팀의 앙리 소령은 도씨에 쓰크레라는 비밀문건을 조작하였다. 결국 드레퓌스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영화 <빠삐용>으로 유명한 남미 기아나의 악마의 섬으로 보내졌다.

그러나 비밀은 오래갈 수 없는 법. 그 후에 또 독일무관과 내통하는 프랑스군 장교의 메모가 발견되었는데 위 찢어진 메모의 필체와 같은 것이 아닌가? 악마의 섬에 수용된 드레퓌스가 또 다시 이런 메모를 작성할 리는 없을 테고... 하여 새로 부임한 정보국장 죠르쥬 삐까르 대령은 다시금 수사를 하여 진범이 에스터하지 소령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그런데 프랑스 군 고위당국자들은 자신들이 억울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았다는 것이 밝혀져서 군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이 두려워 이를 덮으려 한다. 그리고 이를 항의하는 삐까르를 멀리 튀니지로 발령을 낸다. 이후 이를 알게 된 정치가 오귀스뜨 쐬레 케스트너가 프랑스의 정의가 사라졌다며 문제를 제기하지만, 통하지가 않는다. 이미 여론은 유대인이 신성한 프랑스군에 잠입하여 군사기밀을 원수의 나라 독일에 팔아먹었다는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여기서 에밀 졸라가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라는 글을 신문에 기고한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오히려 명예훼손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유죄를 선고받는다. 당시 프랑스는 드레퓌스가 진범이라며 도대체 다른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과 프랑스의 정의를 살리려는 사람들과의 대립으로 얼마나 시끄러웠겠는가? 하여 신임 전쟁성 장관 자끄 마리 까바이냑은 더 이상 딴소리 나지 않도록 유죄 증거를 더 보강하라고 한다. 그런데 웬걸? 오히려 결정적 증거가 된 도씨에 쓰크레 문건이 조작된 것으로 드러나, 이를 조작했던 앙리 소령이 자살한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재심이 열렸지만 재심에서도 이런 프레임을 깨지 못하고, 드레퓌스에게는 그대로 유죄가 인정된다. 다만 형만 5년으로 단축되어 이미 형기를 다 채운 드레퓌스는 석방은 될 수 있었다. 아마 재판부도 드레퓌스가 무죄라는 심증은 가졌지만, 진실보다는 프랑스군의 명예를 중시하는 극우주의자들의 거센 압력에 타협적인 판결을 한 것이 아닐까? 그 후 드레퓌스는 프랑스 정부의 사면, 복권으로 1906년 복직되었지만, 그렇다고 유죄가 무죄로 바뀐 것은 아니지 않는가? 결국 이 사건은 100년이 지나서야 1995년 9월경 무죄가 인정된다. 사람들이 일단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확신해버리면, 실제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것이 이렇게도 힘이 드는 걸까?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 우리는 드레퓌스 사건을 들여다보면서, 잘못된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들만의 정의를 위하여 한 사람의 인권은 아무렇지 않게 짓밟는 모습을 보고 배워야 한다. 그런데 신작가가 염려하는 것처럼 우리는 드레퓌스 시대의 사람들보다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더라도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고 자기가 믿고 싶어하는 것만을 믿는 확증 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또한 진영논리에 갇혀 상대방 진영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자기네 진영 주장은 잘잘못도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옳다고만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게 된다. 이미 조국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질리도록 보지 않았는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난리인 요즘도 그렇다. 이럴 때일수록 우선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어떻게 퇴치하느냐에 힘을 모아야 할 텐데,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사실에 근거하지도 않고 잘잘못 따지는 데만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러한 경우 언론이 팩트 체크를 하면서 이를 바로 잡아주어야 할 텐데, 당파성에 사로잡힌 많은 언론들은 이를 저버리고 있다. 아니 저버릴 뿐만 아니라 본문과는 상관없는 자극적인 제목이나 의도를 가진 제목으로 사람들을 오도하는가 하면, 따옴표식 보도로 자신은 인용만 한다면서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나 유투브에서는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진실이여! 정의여! 그대들은 이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에 어디로 숨어버렸는가? 진실과 정의를 찾아주는 언론! 그런 진실과 정의의 길로 이끌어 주는 참다운 리더! 그런 언론과 리더가 참으로 보고 싶은 요즈음이다.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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