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문재인 공산주의자 주장은 사실적시 아니라 명예훼손 안돼"…명예훼손 법리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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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위원회 이사장[사진=연합뉴스]

[아주로앤피]

400여 명의 청중 앞에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고 발언한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이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공산주의자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면서도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사실의 적시'가 아니라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봤다. 16일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 전 이사장에게 일부 유죄(징역 10월, 집형유예 2년)를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이를 서울고법이 다시 재판하게 했다.

대법원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발언은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구체적 사실"이 아니라 "의견 또는 평가의 표명"이라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사실 혹은 허위사실의 적시'가 없다고 판단했다.
 
명예훼손죄에서 '사실'이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는 사실 아닌 주관 영역

형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요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는 문제가 되는 발언이나 표현이 구체적인 인물을 향해야하고(특정성), 그 발언이 다수 앞에서 이뤄져야하며(공연성), 의견이 아니라 입증 가능한 사실을 명시적으로 표현(사실 적시)해야한다.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의 경우 문재인 대통령을 특정했고, 그 발언이 400명 앞에서 이뤄졌기에, 명예훼손죄의 두 가지 요건('특정성' 및 '공연성') 갖추고 있다.

앞서 검찰은 고 전 이사장의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발언은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며 명예훼손죄로 기소했다. 1심은 고 전 이사장에게 명예훼손의 고의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지만 항소심은 피해자를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는 발언이 허위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이 피해자가 부림사건의 변호인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한 점을 주목해, '공산주의자 발언'은 검증이 가능한 구체화된 허위 사실이라고 봤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사실 또는 허위사실의 적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한다. 앞선 항소심 판결처럼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발언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가능하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있다. 현행 명예훼손죄는 사실 적시 또한 명예훼손죄의 대상으로 삼기에, 발언이 허위가 아닌 사실이었어도 고 전 이사장은 명예훼손죄에 따라 처벌될 수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사실인지 또는 허위인지 검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봤다. 대법원은 "어느 한 개인이 공산주의자인지 여부는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다면서, "공산주의자로서의 객관적 ·구체적 징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고 판시했다. 즉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다'라는 명제는 사실과 거짓을 판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각 개인이 주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상대적 영역이기에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수 없다는 판결이다.
 
명예훼손죄의 참작 사유, '공공성'과 '표현의 자유'

이날 대법원은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하면서 특정 개인이 어떤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는지를 "증거에 의해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은 "공론의 장에 나선 공적 인물이나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점이 확인된다고 했다.

또한 대법원은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공적 인물인 피해자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견교환과 논쟁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이라며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처럼 현행 법리는 특정 발언이나 표현이 공공의 이익 또는 공적인 사안에 관련이 있으면, 표현의 자유를 보다 넓게 인정한다. 이에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이 만약 사실 적시에 해당했더라도, 법원은 판단에 따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리는 개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문제를 낳기도 한다.

앞서 항소심은 고 전 이사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며 "발언 내용의 중대성과 피해자의 명예가 훼손된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미치는 이념 갈등상황에 비춰보면 피고인의 발언이 표현의 자유 범위 안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피해자가 공산주의자라고 볼 근거는 피고인의 논리비약 외에는 없다"라며 "피고인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이념 갈등을 부추겼고, 이는 헌법 정신에 명백히 어긋난다"고도 지적했다. 고 전 이사장 발언의 공익성이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신, 피해자에 대한 명예훼손을 강조한 판결이다. 

이처럼 만약 파기환송심에서 서울고법이 고 전 이사장의 발언은 허위사실에 해당하며, 공공성이나 표현의 자유에 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재판 결과는 다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